
예전에 본 드라마지만 재밌었던 드라마. <월수금화목토> 방영당시엔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이 내겐 하나하나 모두 보물 같은 배우들이다. 연기력 좋은 배우들 덕에 대한민국 드라마는 늘 보는 맛이 다양하다.
날이 추워지면 로맨스 드라마가 더 땡긴다. 선선하고 옆구리가 시릿한 계절에 보면 좋을 드라마가 넷플에도 떴길래 다시 한번 정주행 해봤는데, 역시 재밌다.
박민영 배우가 선택하는 작품들 늘 재밌게 봤는데 <내 남편과 결혼해줘>랑 견줘도 좋을 작품이 월수금화목토가 아닐까?
민영배우님, 건강하게 다작해주세요.
| 흙탕물인 결혼시장에 결혼마스터의 등장

이 드라마의 재밌는 설정은 여자 주인공의 직업이다.
결혼대행 서비스를 하는 여자. 이른바 '결혼 마스터' 완벽한 비혼을 위해 이런 서비스를 스스로 고안해 낸 '최상은'
결혼을 해주는 배우자 대행서비스라니 골 때린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유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을 그냥 그 자체로 바라보지 못하는 세상은 그들에게 결혼이라는 똑같은 제도에 너도 들어와야 한다고 압박한다.
'회장님이 부부동반 골프모임에서 업무 이야기를 하시니까.'
'손주며느리를 원하는 할머니의 소원때문에'
사연이 뭐든 와이프를 필요로 하는 싱글이 넘쳐났고 그들에겐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 압박에 이기지 못한 사람들의 필요가 상은이 결혼마스터로 활동하는 정당성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왜 다름을 그토록 불편해하는 걸까?
첫 화에 등장한 사연자들의 이야기 끝에 나타난 '광남'은 상은의 고객이었던 인물로 극 중에서 게이로 등장한다. 딸부잣집 막내아들로서 남자다움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하나같이 맞지 않는 옷 같았던 인생에서 탈출구로 상은과의 결혼을 선택한다. 곧 이혼은 했지만 상은과 동거하며 살아가는 광남은 어딘지 저세상의 삶을 살아가는 상은이 유일하게 진짜 현실 속 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상대방이다.
그는 이 드라마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는데, 나는 이 인물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은의 동거인이자 조력자로서 그녀의 아슬한 일상을 진짜 현실세계와 이어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직업정신인 고객 맞춤반지가 촤르르륵 나열된 서랍장을 열 때는 나도 모르게 전율이 일었다.
와우. 고객명단을 반지로 설정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365일 매일 다른 반지를 끼고 지낸다니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눈 돌아갈만한 장면이었다. 그 사람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눈에 뜰어오게 클로즈업된다. 월수금에 만나는 단골고객. 정지호.
그리고 화목토의 새로운 고객, 탑스타 배우 해진.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였다가 아침드라마 같은 장르변경이 확확 되는 다장르형 로맨스다.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는 점이 이 드라마를 끝까지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요소였다.
요일별 로맨스, 예측불허의 감정선
드라마의 제목처럼, 최상은은 월수금에는 정지호와, 화목토에는 강해진(김재영 분)과 계약 결혼을 한다. 이 설정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감정의 다층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정지호는 조용하고 내면이 깊은 판사로, 감정을 드러내는 데 서툴지만 진심은 누구보다 깊다. 반면 강해진은 톱스타답게 화려하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최상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이 두 남자 사이에서 최상은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는 시청자에게도 끊임없는 궁금증과 몰입을 유도한다. 그 둘 사이를 오가며 달라지는 감정 연기를 해낸 박민영의 모습이 정말 반짝반짝거렸다.
정지호는 판사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처럼 보인다. 감정 없는 사람이 내리는 판결은 정확할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판사의 판결도 결국은 사람사이의 일을 조율하는 것이기에 그의 주변인들은 그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가족을 제외하고) 그에게 상은과의 관계는 주변인들을 위한 배려 같은 것이다. 상은은 다른 고객들과는 다르게 지호와의 관계는 정리하기 어려워한다. 광남의 말처럼 어쩌면 상은은 처음부터 지호를 신경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다른 듯 닮은 상처를 감싸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드라마에서 내내 마담에게 보낼 돈을 벌기 위해 결혼마스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처럼 섬세한 오지랖을 가진 사람도 드물어 보인다. 그녀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면 그녀가 계약을 맺고 그저 사진 몇 장이나 결혼증명서를 만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텐데 그녀는 자신이 만나는 모든 고객 (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과의 인연)의 옆을 살뜰히 들여다보고 챙긴다. 단순히 그녀가 이런 삶을 선택해 (자신의 인생을 일부러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자신을 이용하려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는) 살면서 만난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의도에 의해 밀어붙임 당하는 삶이 얼마나 고된지 알기에 그들을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돕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 보는 맛이 확실했던 대사와 장면들
무엇보다 재밌었던 건 대사와 장면이 절묘하게 이어지는 점들이다.
상은을 첫사랑으로 간직한 해진의 대사 "만약에 결혼했지? 그럼 그 남자도 제정신이 아닌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 뒤에 바로 (정말로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는) 지호가 등장한다.
이런 장면들에서 나는 옆구리를 쿡쿡 찔리며 웃게 된다.
이 드라마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진지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 캐릭터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고, 때로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시청 후에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민영 배우의 따뜻한 연기와, 그녀가 그려낸 최상은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 드라마는 사랑을 계약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마음은 계약의 예외임을 보여준다.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감정이고, 관계는 역할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월수금화목토》는 그 진리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전해준다.
둘의 마음은 오히려 결혼 계약이 종료된 시점부터 진지해진다. 자신의 마음을 오히려 편하게 꺼내놓을 수 있게 된 건 아무 말 없이 그저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서로의 필요가 되어준 시간 덕분이었을 것이다.
묵묵히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조용히 먹으며 보내는 시간을 화면 속에서 보면서 나와 남편이 식사하는 장면이 종종 떠오르곤 했다.
| 이미 초장에 밝혀진 결말
이 두라마의 두 남자 주인공 (지호와 해진)은 한 여자를 사랑한다. (대부분의 로맨스 드라마가 그런 것처럼)
제이미 또는 상은은 둘 중 누구를 사랑하게 될까? 시청자에게 가장 궁금한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재밌게도 이 드라마의 초반에 이미 결말이 암시되었다.
해진이 기르는 고양이 제이미는 해진의 극진한 사랑을 받지만 해진은 제이미에게 손도 대지 못한다.
까칠한 고양이 제이미는 지호의 품에는 자연스럽게 안긴다. 지호 품에 안긴 제이미에게 손을 뻗었다가 앙칼진 반응만 얻을 뿐이다. 이쯤이면 상은이 누구의 손을 잡고 진짜 관계를 이어나갈지 알 수밖에 없다.
| 이 드라마의 진짜 이야기
'역할 대행서비스'라는 게 참 사람 씁쓸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우리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들을 '정'이라는 이름 앞에서 너무 아무렇게나 써왔기 때문에 결국은 이런 필요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서비스를 수행해 내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는 냉철한 이성도 필요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상대를 향한 열린 마음이 아닐까?
사람들은 타인에게 '진짜' 관심이 없다. 우리는 나를 제외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기엔 너무나도 분주하다.
그러면서도 관심 있는 척 군다. 진짜로 관심을 가진다는 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만일 마담이 상은에게 진짜 관심이 있었다면 자신이 살면서 얻은 삶의 기준을 마냥 상은에게 가져다 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든지 잘 해내려고 애를 쓰는 아이를 보며 그 아이가 가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그 뒷면의 인정받지 못하면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누군가의 품이고 사랑이었을 것이다.
너는 존재만으로 나랑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믿음.
이 드라마 속에는 모든 인물이 상처를 안고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결혼시장에 거래물품으로 길러지는 '상은'
아끼고 지켰어야 할 배우자의 외도로 상처받은 '지호'
재벌가의 혼외자로 자라며 차별받아온 '해진'
말고도 상은의 고객들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하나씩 아픈 상처를 가진채 상은을 찾는다.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지만 우리는 때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아픈 상처를 주고 만다. 가족이라는 굴레가 한 사람에게 가하는 상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가장 아껴줘야 할 사람들에게 진짜 관심을 가지고 아끼고 살아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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