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었던 추석 연휴.
자고 일어나도 아직 휴일이라 정말.... 힘들었다.
볼 것들이 많아서 행복했다. <폭군의 셰프>는 추석 연휴에 방영한 건 아니지만 추석을 앞두고 최종화가 방영되었다.
추석에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몰아보기에 딱 좋았다는 이야기 :)
티빙과 넷플릭스에서 모두 볼 수 있는 드라마.
티빙과 함께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라서 넷플릭스 오리지널과는 달리 TV 방영일정보다 뒤늦게 넷플릭스에 오픈되었다.
하도 재밌다는 평이 많아서 시작을 해버리는 바람에 오랜만에 방영일을 기다리며 애를 태웠다.
내가 좋아하는 사극이면서 로맨스 장르라니!
딱 내 취향 저격. 걱정이 되었던 건 원작이 웹소설이라는 점.
웹소설이나 웹툰원작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때는 그 시장에서 먹히는 것들이 때때로 드라마 속에서는 과하거나 시시해지고 마는 걸 몇번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폭군의 셰프의 원작인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를 보지는 못했던 터라 비교하는 마음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웹소설 중 로맨스물은 회.빙.환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어차피 드라마에서도 현대의 인물이 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는 건 수 없이 다루어졌으니 어색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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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셰프를 재밌게 보는 맛.
매회차 에피소드 이름으로 제시되는 음식이 어떻게 나올까하는 점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연산군이 실제 중국 사신을 대접하면서 사신이 대동한 요리사와 조선의 요리사가 서로 요리를 겨루는 요리대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있다고 한다. 실록의 한줄이 드라마가 되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요리사와 폭군이었던 왕의 사랑이야기라니 인물들의 밀당도 보는 맛을 자극하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묘미는 연지영 (임윤아 배우)의 요리다.
회차별로 등장하는 메인 요리는 각 에피소드의 꽃이 된다.
1화 고추장 버터 비빔밥
1회차엔 연지영이 조선시대로 떨어져 연산군과 마주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고추라는 식재료가 조선시대에는 없었다. 그러니 고추장이 있을리가?
고추장을 먹고 매워하는 연산군의 모습을 보는 게 재미.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받아서 버터와 고추장을 주머니에 넣어서 이걸 요리에 활용한다는 개연성이 1화에서 내가 눈여겨본 지점이었다. 1화에서 비빔밥을 먹고 연산군은 이미 연지영에게 반하지 않았을까?
그 폭군이 지영을 제압하지 않고 살려뒀다는 것만 봐도.... 이미 호감의 싹이 텄다는 게 내 생각.
2화 수비드 스테이크
수비드로 익힌 고기를 조선시대 사람들이 맛본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고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수비드 요리를 먹어볼 기회는 없었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맛이긴 했다. 2화에서는 잡혀갈 위기에 처한 연지영이 기지를 발휘해 양반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요리를 선보이는 내용 속에서 등장한 요리라서 지금시대의 수비드 요리가 가진 느긋한 뉘앙스와 드라마 속 지영이 처한 상황의 긴박함의 불협화음이 묘하게 대비되어서 재밌게 느껴지는 회차였다. 이 드라마의 주요인물 중 하나인 간신 임송재가 등장해 그 캐릭터를 보여주는 회차이기도 했는데 좋은 놈인지 나쁜놈인지 이상한 놈인지 알 수 없게 느껴지는 배우의 연기력이 다시보니 놀랍다.
3화 오뜨 퀴진
연산군 역을 맡은 (대체된 배우) 이채민의 매력이 폭발하는 회차가 3화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반신을 풀어헤친 채로 오트 퀴진 수라를 받는 모습과 상반되게 처음듣는 요리의 이름을 어설프게 발음하면서도 성질머리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이 캐릭터에 푹 빠지지 않았을까? 사실 왕이 수라를 받으면서 옷을 벗어제끼고 있다는 것은 비상식적이지만 폭군이었던 연산군이니 시도해볼만한 장면이었으리라.
4화 시금치 된장국
4화의 요리는 대령숙수에 임명한 연지영과 그를 인정할 수 없는 수랏간의 숙수들이 요리대결을 하는 장면 속에서 등장한다. 앞서 등장한 수비드 스테이크, 오뜨 퀴진과 대비되는 소박한 요리라서 어딘지 힘이 빠진 요리가 아닌가 싶긴 했지만 입맛없는 대비를 우리가 익히 아는 할머니로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그런대로 이해가 된다.
조선시대에 시금치를 생으로 먹지는 않았던게 사실일까? 궁금하기도 했던 회차다. 이거 본날 시금치 된장국 끓여먹은 건 비밀.
5화 눈꽃 슈니첼
이른바 소고기까스! 겉바속쫄이 등장한 이 회차의 요리가 익숙하지만 신선하게 다가온 건 복분자 덕분? 나중에 돈까스코스 요리에 복분자소스가 함께 등장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이 회차에서 제산대군도 연셰프에게 반하는 거 아닌가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아니었다.
6화 흑임자 마카롱
맛표현 CG가 정말 열일하는 드라마. 마카롱에 등장하는 화려한 조명에 폭소를 했다.
배우들의 표현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이채민이 혼자서 맛을 느끼는 표현을 해낼때보다 함께일때 그 분위기가 더 살아난다. 명나라 사신으로 등장한 배우님의 연기력 진짜 얄밉게 좋다. 6화부터 이 드라마의 진수가 드러난다고 느낀게 화려한 요리 대결이 시작되니 인물들이 더 활기를 띠는 느낌이었는데 아쉬웠던 건 악인들의 활약이 요리대결에 좀 밀린다.
7화 비오는 날의 동래파전
장영실의 후손이 등장하는데... 고 창석배우의 열연. 동래파전도 정말 맛깔나게 표현되었는데 비오는 날 그의 비주얼이 단연 압권이었다. 압력밥솥을 그에게 만들어달라고 청하는 설정이 흥미롭다.
8화 쌀머루주 비프 부르기뇽
명나라 요리사들과의 첫번째 대결요리 화려한 요리대결을 펼치는 장면만으로도 훌륭했던 회차다. 아비수라는 명나라 요리사가 고춧가루를 훔쳐 연숙수를 위기에 빠트리려 하지만 다행히 명나라의 요리사 중 하나가 조선의 편을 들며 무승부로 판결이 난다.
인삼 채굴권을 두고 벌이는 경합이라 정작 요리사들보다 승부에 민감한 건 조선의 왕과 명의 대사다.
9화 압력솥 오계탕
동래파전편에서 부숴져버린 압력솥을 장열실의 후손이 독특한 방법으로 궁까지 가져온다. 이 방법에 대한 기록을 나도 언젠가 본적이 있다. 드라마에는 역사 속에 그저 스쳐지나간 것 같은 소재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그려진다는 게 좋았다.
10화 조선식 레스토랑
연산군의 배다른 동생인 왕자가 연숙수의 음식을 먹고 쓰러져 버리고 범인으로 몰린 연지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산군의 모습으 그려지는 회차다. 이 회차에서는 특별히 요리가 주목을 받는 이야기가 그려지지는 않지만 연숙수에 대한 연산군의 마음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회차라서 현재 처한 연지영의 상황과는 반대로 애정을 깨닫는 게 그려져서 재밌었다. 요리가 아닌 궁 안의 음모와 역사가 스포인 연산군의 행보가 차차 드러난다. 요리와 역사가 바톤을 터치하는 느낌이랄까?
11화 콩고기 구절판 & 가지파이
괴기는 아닌데 괴기같은 것. 대왕대비의 생일잔치가 벌어진다.
역사 속에서 벌어진 참극이 벌어지는 회차이기도 한다. 여기서 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대비를 위한 콩고기를 대접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역시나 이 회차에서도 요리보다는 역사속의 참극을 어떻게 그려내고 소화해낼지가 더 관건인 듯 보인다.
연지영이 연산군을 설득하는 장면이 오히려 나를 설득하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참는다고? 이게 가능하다고?' 이런 느낌이 들어버렸다.
12화 환세반
환세반은 1회차에 연지영이 만든 비빔밥에 대해 연산군이 붙인 이름이다.
드라마 첫 장면에서 연지영이 잃어버린 책 속에 등장한 요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를 전부 본 후에 어딘지 허전한 느낌이 들었는데 결말이 조금 서둘러 지어진 느낌이 들기 때문 아니었을까?
역사대로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연숙수가 연산군을 구하기 위해 애쓰지만 현대로 돌아가는 장면이... 꽤 회자가 되었는데
'마법천자문이야??' 라는... 생각... 나만 한 거 아니었구나.
아무튼 꽉찬 해피엔딩인데 어딘지 허전한 해피엔딩인 건 나만 그런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지와 현실의 간극을 배우들이 채워넣으려 애쓴 게 느껴져서 보는 내내 즐거웠던 드라마였다.
이런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많이 등장해주면 좋겠다.
보는 맛 가득한 로맨스 드라마로 인정.
사극 고증에 예민한 분들이라면 패스!
요즘 정말 K-푸드가 대세인가 보다.
물론 극중의 윤아가 연기한 극중 숙수인 연지영이 프렌치 셰프로 미슐랭을 획득한 유능한 요리사이기에 정통 한식이라기 보다는 퓨전 요리가 주로 등장한다.